1334.7원, 2년 만에 뚫린 이 숫자 뒤에서 국민연금 환헤지 중단이 움직이고 있었다
9월 7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334.7원까지 내려가며 2025년 10월 4일(1331.3원) 이후 약 2년 만의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런데 정확히 그 시점에 국민연금 환헤지 중단 소식이 전해지자 환율은 곧바로 낙폭을 되돌려 1340.5원에 마감했다. 여러 매체는 이 장면을 “국민연금이 하락세에 제동을 걸었다”는 식으로 전했지만, 그 제동장치가 오늘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 4월 정부가 이미 설계해 둔 틀이 예정대로 작동한 결과라는 사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은 오늘의 숫자보다, 그 틀이 언제 누구의 이름으로 만들어졌고 그 대가는 누가 치르는지를 따라간다. 결론부터 말하면, 오늘의 반등은 국민연금이라는 이름을 빌린 정책 장치가 정확히 설계된 대로 작동한 두 번째 사례에 가깝다.
목차
- 오늘 서울 외환시장에서 벌어진 일
- 국민연금 환헤지 중단, 오늘 정말 시장이 만든 반등이었나
- 2018년 100% 환오픈에서 2026년 15%로, 조용히 바뀐 원칙
- 투자 판단인가, 정책 수단인가—이해상충의 구조
- 6월과 9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두 번의 헤지
- 원화 강세, 누가 웃고 누가 우는가
- 다음 체크포인트—무엇을 지켜봐야 하나
오늘 서울 외환시장에서 벌어진 일
이날 원/달러 환율은 1347.8원으로 출발해 오전 10시를 전후해 1334.7원까지 밀렸다. 두 달 전인 7월 1일 종가 1559.2원과 비교하면 224.5원 낮은 수준이고, 최근 4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이 기간에만 29.9원이 빠졌다. 오후 3시30분 기준 종가는 전 거래일 대비 9.9원 내린 1340.5원으로 마감했다.
| 구분 | 수치 |
|---|---|
| 9/7 개장가 | 1,347.8원 |
| 9/7 장중 저점 | 1,334.7원 |
| 9/7 종가(오후 3시30분) | 1,340.5원 |
| 전 거래일 대비 | -9.9원 |
| 4거래일 누적 낙폭 | -29.9원 |
| 7월 1일 종가 대비 | -224.5원 |
| 달러인덱스(DXY) | 99.097(+0.10) |
| 코스피 외국인 순매수 | +2조5,535억원 |
하락을 이끈 힘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경상수지 흑자에 따라 수출기업들이 꾸준히 달러를 팔아치운 물량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엔저 시정 압박과 일본의 대규모 환율 개입으로 엔화가 동반 강세를 보인 흐름이다. 반대 방향의 재료도 있었다. 미국의 8월 비농업 고용이 16만2000명 늘어 예상을 크게 웃돌면서 9월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다시 부각됐고, 달러인덱스도 99.097로 소폭(0.10) 올랐다. 그런데도 원화 강세 흐름 자체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같은 날 코스피에서는 외국인이 2조5535억원을 순매수하며 위험자산 선호 심리도 함께 확인됐다.
이번 하락이 정확히 ‘몇 개월 만’인지를 두고는 매체마다 인용한 기준점이 갈린다. 한 매체는 2025년 10월 4일의 1331.3원을 기준으로 삼았고, 다른 매체는 2024년 10월 4일의 1333.7원을 기준으로 “23개월 만의 최저치”라고 못박았다. 두 기준점 모두 오늘 장중 저점(1334.7원)보다 낮아 “이후 가장 낮다”는 결론 자체는 바뀌지 않지만, ‘2년’과 ’23개월’ 사이에는 실제로 1년 가까운 차이가 있다. 헤드라인의 어림값만 보고 정확한 비교 시점을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국민연금 환헤지 중단, 오늘 정말 시장이 만든 반등이었나
낙폭이 되돌려진 시점은 공교롭게도 국민연금 환헤지 중단 소식이 알려진 직후였다. KB국민은행 이민혁 연구원은 “상반기 중에 국민연금 환헤지 물량이 상당히 많이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인데, 환헤지 종료 소식에 환율이 낙폭을 되돌린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환율은 장중 저점 1334.7원에서 마감 1340.5원으로 5.8원, 비율로는 0.43% 반등하는 데 그쳤다. 추세를 뒤집었다기보다 낙폭을 살짝 눅인 정도다.
그런데도 오늘자 보도 다수는 이 장면을 “국민연금이 방어선을 그었다”는 표현으로 요약했다. 여기서 놓치기 쉬운 질문이 하나 있다. 국민연금이 ‘오늘’ 시장 상황을 보고 판단해서 움직인 것인지, 아니면 몇 달 전에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정확한 타이밍에 움직인 것인지다. 답은 뒤로 갈수록 후자에 가까워진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소식이 전해진 경로다. 국민연금이 헤지 비율 조정을 공식 발표한 것이 아니라, “환헤지를 접고 달러를 다시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오전 장에서 외환딜러들 사이에 도는 수준이었다. 공식 확인 여부와 무관하게 환율이라는 숫자 하나가 확인되지 않은 소문에도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연금의 존재감이 시장 심리에서 이미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준다.
2018년 100% 환오픈에서 2026년 15%로, 조용히 바뀐 원칙
국민연금은 2018년 이후 해외투자에 대해 사실상 100% 환오픈 원칙을 지켜왔다. 환차손을 방어하려고 헤지 비용을 치르는 것보다, 헤지를 하지 않고 해외 주식의 수익률을 그대로 누리는 편이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국민연금의 해외자산 비중이 전체의 60% 안팎, 금액으로는 약 860조원까지 불어나면서다. 몸집이 커질수록 원/달러 환율 변동 하나가 기금 전체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2월 5일 ‘국민연금기금 뉴프레임워크 기획단’을 구성해 환헤지 정책 전반을 재점검하기 시작했다. 두 달 뒤인 4월 14일,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해외투자 자산의 전략적 환헤지 비율을 15%로 상향하기로 의결했다. 표면적 이유는 중동 정세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넘나들며 변동성이 급증했다는 것이었지만, 의결 배경 설명에는 “외환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려는 취지”라는 표현이 명시됐다. 기본 헤지 비율 15%에 기금운용본부가 재량으로 조정할 수 있는 전술적 헤지 폭(±5%)을 더하면 최대 20%까지 환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구조다. 씨티그룹은 이 결정 하나로 새로 발생하는 헤지 물량을 300억~600억달러, 원화로 44조~88조원 규모로 추정했다. 정부는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과의 통화스왑을 활용해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내놓았다.
규모를 가늠할 또 다른 숫자가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상반기(6월 말 기준) 기금적립금 1866조원, 잠정 수익률 27.22%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압도적 성과는 코스피가 6월 한때 9000선을 넘본 국내 주식시장 호조 덕분이었고, 해외주식 수익률은 17.81%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해외자산은 원화로 환산되는 순간 환율 변동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반기 내내 원화가 강세(1559원대→1368원대)로 흘렀다는 사실이 해외주식 성과의 발목을 어느 정도 잡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헤지 비율을 15%로 올린 결정의 배경에는 이런 체감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투자 판단인가, 정책 수단인가—이해상충의 구조
이번 국민연금 환헤지 중단과 같은 조치들은 보건복지부의 뉴프레임워크에 따라 국민연금이 환율 안정 기능의 일부를 사실상 떠맡게 된 결과다. 국민연금법이 정한 기금의 본질적 목표는 가입자와 수급자의 노후소득을 위해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지, 원/달러 환율을 특정 구간에 묶어두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헤지 비율을 올리는 결정의 배경 설명에 “외환시장 수급 불균형 완화”라는 문구가 등장하는 순간, 그 결정은 순수한 자산배분 논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시장에서는 이미 “국민 노후자금을 활용해 환율을 관리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거나 “국민연금의 역할이 정책 수단으로 확장돼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우려는 세 갈래로 갈린다. 첫째, 고환율 국면에서 헤지 비율을 올리면 오히려 수익률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기획단 논의 과정에서부터 있었다. 둘째, 국민연금이 파생상품 시장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는 규모를 외화채 발행으로 직접 조달하는 방안까지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그 자체로 금융비용을 발생시킨다. 셋째, 씨티그룹이 추정한 300억~600억달러라는 물량은 국내 외환시장의 일평균 거래대금과 비교해도 무시하기 어려운 규모여서, 시장 참가자들이 국민연금의 다음 움직임을 미리 읽고 선행매매에 나설 유인이 생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원화가 강세로 돌아설 때 해외자산의 원화 환산 가치가 깎이는 것을 헤지 확대로 방어하는 것은 정상적인 리스크관리의 범주로 볼 수 있고, 오히려 그동안 100% 환오픈으로 놔둔 쪽이 이례적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그 타이밍이 매번 정부가 원하는 방향과 정확히 겹친다는 점에서, 순수한 투자 논리만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뉴프레임워크 기획단 스스로도 이 긴장을 부인하지 않는다. 기획단은 “기금 운용 성과 제고라는 본질적인 목표를 유지하되, 국내 금융·외환 시장에 과도한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는데, 뒤집어 읽으면 지금 이대로는 두 목표가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책 설계자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설명은 아니지만, 왜 하필 국민연금이었는지를 구조적으로 짚어볼 수는 있다. 정부가 환율에 개입하고 싶을 때 한국은행이나 외환당국이 직접 나서면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가 추적하는 ‘외환시장 개입’ 항목에 그대로 잡힌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나 대미 무역흑자와 함께 이 개입 규모가 일정 기준을 넘으면 환율관찰대상국·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될 위험이 커진다. 반면 국민연금의 환헤지 비율 조정은 통계상 연기금의 자산배분 행위로 분류돼 같은 잣대로 집계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원화 환율에 미치는 효과는 비슷하면서도, 국제사회에 보고되는 방식은 전혀 다른 셈이다. 이런 우회로가 실제 설계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효과를 낸다는 점은 짚어둘 만하다.
6월과 9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두 번의 헤지
이 구도가 실제로 작동한 첫 사례는 지난 6월이었다. 원화 약세가 심해져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까지 오르자 국민연금은 선물환 매도를 통해 환헤지를 재개했다. 앞으로 받을 달러를 미리 파는 거래인 만큼, 이는 시장에 달러 공급을 늘려 원화 약세 속도를 늦추는 효과를 낸다. 이번 9월은 정반대다. 원화 강세가 심해져 환율이 1330원대까지 내려가자, 국민연금은 이번엔 헤지를 멈추고 달러 매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두 사례 모두 ‘시장이 과열된 방향의 정반대’로 움직였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 구분 | 2026년 6월 | 2026년 9월 7일 |
|---|---|---|
| 원/달러 환율 | 1,500원대 | 1,330원대 |
| 원화 방향 | 약세 심화 | 강세 심화 |
| 국민연금 조치 | 선물환 매도(헤지 재개) | 환헤지 중단(달러 매수) |
| 시장 효과 | 달러 공급 확대 → 원화 약세 제동 | 달러 수요 확대 → 원화 강세 제동 |
이번 국민연금 환헤지 중단이 순수한 투자 판단의 우연한 일치라면 상당히 공교로운 우연이고, 애초에 설계된 정책 수단이라면 그저 예정대로 작동한 것일 뿐이다. 이는 기준금리가 오르면 내 대출이자와 예금금리는 정확히 언제, 얼마나 바뀌는가에서 짚었던 것과 같은 원리와 맞닿아 있다. 정책이 발표되는 시점과 그 효과가 시장에 실제로 반영되는 시점 사이에는 늘 시차가 있고, 그 시차를 메우는 손과 발이 이번에는 국민연금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원화 강세, 누가 웃고 누가 우는가
환율의 방향이 어느 쪽에서 만들어졌든, 원화 강세가 만드는 실제 손익은 업종마다 정반대로 갈린다. 2026년 3분기 들어 항공유 등을 달러로 결제하는 항공업종은 원화 환산 비용이 줄며 KRX운송지수가 13.8% 올랐다. 철광석과 원료탄을 달러로 수입하는 철강업종도 원가 부담이 가벼워지며 KRX철강지수가 11.7% 상승했다.
반대편에는 수출 비중이 높은 업종이 있다. 달러 표시 매출을 원화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실적이 깎이는 자동차업종은 같은 기간 KRX자동차지수가 10.2% 내렸다. 반도체는 더 예민하다. 원화 가치가 10% 오르면 국내 메모리 업체의 영업이익이 약 12%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있고, 씨티그룹은 이런 논리로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10% 낮춰 잡았다. 원화 환산 이익 감소분은 약 2조6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원화 강세는 수출기업 전체에 악재”라는 단순한 프레임으로는 이 명암을 설명할 수 없다. 가격결정력이 약하고 달러 매출 비중이 절대적인 업종일수록 충격이 크다는 것이 오늘 숫자가 보여주는 그림에 가깝다.
기업 실적표 바깥에 있는 가계 입장에서는 또 다른 그림이 그려진다. 해외여행 경비나 해외 직구 물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고, 수입 비중이 큰 에너지·식품 물가에도 완화 요인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다만 이런 체감 효과는 몇 주에서 몇 달의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 편이어서, 오늘 하루의 환율 변동만으로 벌써 확인하기는 이르다.

다음 체크포인트—무엇을 지켜봐야 하나
다섯 가지를 지켜볼 만하다. 첫째, 원화가 추가로 1300원선까지 밀릴 경우 국민연금이 헤지 비율을 더 올릴지, 정부가 추진 중인 외화채 발행을 서두를지 여부다. 둘째, 반대로 원화가 다시 급락하는 국면이 오면—미국의 예상 밖 금리 인상이나 반도체 업황 둔화가 계기가 될 수 있다—6월과 같은 헤지 재개 사이클이 되풀이될지, 그때 국민연금의 헤지 실적이 실제로 기금 수익에 도움이 됐는지 손실로 남았는지가 사후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셋째,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해 내년 초 발행을 목표로 하는 외화채 발행 법안의 국회 통과 시점이다. 넷째, 기획단이 예고한 ‘위기인식지수’ 도입 여부다. 환율이 특정 위험 수준을 넘으면 대응 단계가 자동으로 격상되는 체계인데, 발동 기준이 공개되면 시장 참가자들이 국민연금의 다음 행동을 지금보다 훨씬 정교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다. 다섯째, ‘환중립적 성과평가’ 도입 여부다. 지금은 헤지로 인한 손익이 기금운용본부 담당자의 성과평가에 그대로 반영되지만, 이를 중립화하면 정책적 필요에 따라 헤지를 걸었다 풀었다 하더라도 개인 평가에는 불이익이 없어진다. 정책 수단화를 더 매끄럽게 만드는 장치이자, 동시에 그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다섯 지표 중 어느 하나라도 “국민연금은 여전히 수익률로만 평가받는다”는 결론에서 멀어진다면, 오늘의 국민연금 환헤지 중단은 예외가 아니라 앞으로 반복될 패턴의 첫 장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정리하면, 오늘 서울 외환시장에서 벌어진 일은 두 겹으로 읽어야 한다. 겉으로 보이는 한 겹은 경상수지 흑자와 엔화 동반 강세가 만든 원화 강세, 그리고 그 흐름을 살짝 눅인 국민연금 환헤지 중단이다. 그 밑에 있는 또 한 겹은 2018년 100% 환오픈 원칙이 2026년 15% 전략적 헤지로 바뀌기까지의 정책 설계 과정이며, 이 설계가 얼마나 투명하게, 누구의 이름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며 운용되는지가 앞으로 계속 물어야 할 질문으로 남는다.
본 글은 투자 권유가 아니라 참고용 정보이며, 특정 종목이나 자산에 대한 매수·매도를 권유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