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210포인트 빠진 날에도 정유 마진 랠리가 꺾이지 않은 이유
9월 2일 오전 코스피는 개장과 동시에 3.08% 급락해 6625.47로 출발했다. 미국과 이란의 무력충돌이 다시 불붙으면서 뉴욕증시가 사흘 연속 밀렸고, 그 충격이 고스란히 국내 증시로 옮겨온 결과다. 그런데 같은 시각 에쓰오일과 SK이노베이션, GS 주가는 거꾸로 뛰었다. 국제유가와 정제마진이 동시에 치솟는 이른바 정유 마진 랠리가 벌어진 것이다. 시장은 이를 “공급위기가 길어지니 정유사가 당연히 웃는다”는 단순한 그림으로 소비하지만, 실제 통계를 뜯어보면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정부가 4월부터 석유제품 수출을 제한해 온 탓에 정유사의 실제 판매 물량은 오히려 줄고 있고, 지금의 주가는 이미 2022년 에너지 위기급 밸류에이션을 반영하고 있다. 이 글은 가격은 오르는데 물량은 준다는 비대칭, 그리고 그 청구서가 결국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를 데이터로 짚는다.
목차
- 코스피 급락 속에서도 이어진 정유 마진 랠리
- 7월부터 9월까지, 이란 확전은 어떻게 번졌나
- 유가보다 무서운 숫자, 정제마진이란 무엇인가
- 반컨센서스 ① 마진은 오르는데 물량은 준다
- 반컨센서스 ② 이미 2022년 급의 밸류에이션
- 청구서는 누가 받는가
- 세 가지 시나리오와 체크리스트
- 마치며
코스피 급락 속에서도 이어진 정유 마진 랠리
9월 2일 오전 9시 26분 기준 코스피는 전일 대비 2.27% 내린 6680.63을 기록했다. 개장 직후보다는 낙폭을 일부 만회했지만 대부분 업종이 파랗게 물든 건 마찬가지였다. 운송장비·부품이 3.39% 내렸고 건설(-2.77%), 전기·전자(-2.67%), 제조(-2.57%), 기계·장비(-2.45%)가 뒤를 이었다. 26개 업종 중 유일하게 오른 건 의료·정밀기기(+0.66%)뿐이었다. 수급도 뚜렷했다. 외국인이 3029억원, 기관이 3276억원을 각각 팔아치우는 동안 개인만 5116억원을 사들이며 낙폭을 방어했다.

바로 이 급락장에서 정유 3사만 정반대로 움직였다. 앞서 9월 1일 장에서도 SK이노베이션은 1만400원(8.29%) 뛴 13만5900원에 마감했고 S-Oil은 5.00%, GS는 2.28% 올랐다. 미군이 8월 30일 호르무즈 해협 라라크섬 인근에서 이란의 기뢰 설치용 로켓발사대를 타격하고 이란이 요르단·UAE 주둔 미군기지에 보복한 직후였다. 이 흐름은 하루짜리 이벤트가 아니다. 7월 13일에도 미군의 나흘째 이자 이틀 연속 공습 소식에 SK이노베이션이 10.69%, S-Oil이 8.86%, GS가 5.11% 급등한 전례가 있다. 코스피가 지정학 리스크에 떨 때마다 정유 3사는 거꾸로 웃어온 셈이다.
실제로 이런 디커플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세 번째다. 7월 13일 미군의 이틀 연속 공습 때, 8월 12일 호르무즈 협상 교착 때, 그리고 8월 30일부터 9월 1일 사이 라라크섬 타격과 이란의 드론 격추 보복 때까지, 코스피가 지정학 뉴스에 흔들릴 때마다 정유 3사 주가는 어김없이 5~10%대 급등으로 반응했다. 우연이 세 번 겹치면 패턴이라고 부를 만하다.
7월부터 9월까지, 이란 확전은 어떻게 번졌나
이번 정유 마진 랠리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지난 두 달의 타임라인을 짚어야 한다. 7월 13일 미군은 일주일 사이 네 번째, 이틀 연속으로 이란을 공습했다. 8월 12일에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협상이 교착되며 이란 강경파가 “동결 자금을 풀지 않으면 해협을 절대 열지 않겠다”고 경고했고, 같은 날 브렌트유는 배럴당 88.91달러까지 올랐다. 8월 30일에는 미군이 라라크섬의 기뢰 설치 장비를 타격했고 이란은 요르단·UAE 미군기지를 보복 공격했다. 그리고 9월 1일, 이란 혁명수비대는 신형 방공체계로 미군의 MQ-9 드론을 격추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이 50번째 격추라는 주장과 함께 반다르아바스, 게슘섬, 라반섬, 아살루예 등 호르무즈 인근 요충지에서 폭발음이 잇따라 보고됐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 작전 이후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강화하고 개입하는 외국군을 제압하겠다”고 선언했고, 미국 측은 대규모 추가 타격을 경고하며 맞섰다. 그 결과가 9월 2일 새벽 발표된 유가 지표다. WTI 10월물은 전장보다 5.2% 오른 배럴당 90.22달러, 브렌트유 11월물은 4.6% 오른 94.65달러에 마감했다. 더 눈에 띄는 건 디젤이다. 10월물 디젤 가격은 갤런당 4.7149달러로 6.90% 뛰었고 장중에는 4.7260달러까지 올라 52개월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 10주 동안 디젤 가격만 51% 폭등했다는 집계도 나온다. 원유보다 정제된 석유제품, 그중에서도 경유 가격이 훨씬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뜻이다.
유가보다 무서운 숫자, 정제마진이란 무엇인가
이번 정유 마진 랠리를 뜯어보면 정작 눈여겨봐야 할 숫자는 유가 그 자체가 아니라 정제마진이다. 원유를 사서 휘발유·경유로 가공해 파는 정유사에게 중요한 건 원유값이 아니라 원유값과 완제품값의 차이, 즉 크랙 스프레드다. 원유 3배럴을 투입해 휘발유 2배럴과 경유 1배럴을 만드는 3-2-1 크랙 스프레드 기준으로 미국 정제마진은 현재 배럴당 약 70달러까지 올라 있다. 원유 3배럴당 매출총이익이 210달러에 이른다는 뜻이고, 이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의 에너지 위기 당시 마진을 웃도는 수준이다. 유럽에서는 경유 마진이 배럴당 약 65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마진 확대는 원유 공급 부족이 아니라 정제설비 자체의 파괴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중동과 러시아의 정제시설이 잇따라 타격을 입으며 한때 세계 정유설비의 10~15%가 가동 차질을 빚었는데, 이는 업계에서 “전례가 없다”고 말할 정도의 규모다. 그 여파로 미국 휘발유 재고는 12년 만에, 등·경유 재고는 23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원유는 있는데 이걸 정제할 공장이 부족해지자 완제품 가격만 튀어 오르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2분기 싱가포르 평균 정제마진은 배럴당 24.7달러로 손익분기점인 4~5달러를 대여섯 배 웃돌았다. 그 결과 SK에너지는 전년 4656억원 영업손실에서 6512억원 흑자로, 에쓰오일은 전년 3440억원 손실에서 9650억원 흑자로 돌아섰고 HD현대오일뱅크는 1조8241억원으로 3사 중 최대 이익을 냈다. 다만 GS칼텍스는 개별 상장사가 아니어서 실적이 별도로 공개되지 않고, 대신 지분 50%를 보유한 지주사 GS의 주가 흐름으로 시장에 반영된다는 점은 참고할 대목이다. 세 회사 모두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된 셈이다.

반컨센서스 ① 마진은 오르는데 물량은 준다
여기까지는 언론이 이미 충분히 다룬 그림이다. 그런데 거의 보도되지 않은 숫자가 하나 있다. 정부가 지난 4월 중순부터 국내 비축유를 풀면서 동시에 석유제품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당시 “비축유가 방출되고 석유제품 수출 제한도 걸릴 것”이라며 그 물량을 국내 석유화학 업계로 돌리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3월 한 달 사이 정유사의 내수 판매 비중은 56.4%에서 60.6%로 뛰었고, 수출 비중은 35.9%에서 31.3%로 줄었다. 같은 기간 정유 4사의 휘발유·경유·항공유·등유 수출 물량은 전월 대비 17.7% 감소했다.
다시 말해 정유사들이 지금 벌어들이는 돈은 팔리는 양이 늘어서가 아니라 파는 단가, 그중에서도 마진이 넓어져서 버는 돈이다. 업계 관계자들도 “판매 물량이 줄면 제품 단가가 아무리 올라도 전체 수익은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금은 마진 확대 폭이 물량 감소 폭을 압도하고 있어 실적이 사상 최대치로 찍히고 있지만, 이 구조는 가격 요인 하나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본지가 다룬 원자재 시장 분석에서도 지적했듯, 국내 반도체 수출이 물량이 아니라 가격 효과로 부풀려진 것과 정확히 같은 패턴이 정유업계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차이가 있다면 반도체는 글로벌 수요가 실제로 늘어난 결과이지만, 정유는 국내 정책이 의도적으로 판매 경로를 내수 쪽으로 틀어놓은 결과라는 점이다. 게다가 업계는 호르무즈 사태가 정상화되기까지 짧으면 6개월, 길면 1~2년이 걸릴 수 있다고 본다. 정제마진이 계속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자, 동시에 수출 제한이라는 정책 변수가 그만큼 오래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컨센서스 ② 이미 2022년 급의 밸류에이션
두 번째로 정유 마진 랠리에서 놓치기 쉬운 지점은 주가에 이미 반영된 기대치다. 8월 28일 기준 올해 들어 GS는 133.63%, S-Oil은 85.80%, SK이노베이션은 17.02% 상승했다. 7월 1일부터 22일 사이 단 3주 동안에만 S-Oil이 33%, SK이노베이션이 25%, GS가 27% 뛰었고, 같은 기간 증권가의 3개월 영업이익 추정치는 S-Oil이 43%, SK이노베이션이 27%, GS가 24% 상향됐다. 증권가는 여전히 S-Oil에 40%, SK이노베이션에 65%의 추가 상승 여력을 제시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 밸류에이션이 딛고 선 전제다. 지금의 마진 확대는 수요가 늘어서가 아니라 정제설비가 물리적으로 파괴돼 생긴 공급 충격이다. 시장은 이런 종류의 충격을 종종 영구적인 것처럼 가격에 반영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도 정제마진은 사상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고 정유주는 그해 최고의 성과를 낸 업종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듬해 정제설비가 하나둘 복구되고 물류가 정상화되자 마진은 빠르게 되돌려졌고 정유주 주가도 조정을 피하지 못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도 “이번 공급위기는 다르다”는 낙관이 지배적이었다. 증권가 스스로도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되거나 정제시설이 예상보다 빨리 복구되면 마진이 축소될 수 있고, 유가가 배럴당 90~100달러를 넘으면 수요가 위축되며 상승 동력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공교롭게도 WTI는 이미 90달러를 넘어섰다. 밸류에이션이 낮았던 7월 초와 달리, 지금은 실적 서프라이즈 하나하나가 주가에 이미 상당 부분 반영돼 있어 다음 분기부터는 ‘얼마나 더 오르느냐’가 아니라 ‘언제 꺾이느냐’가 시장의 질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청구서는 누가 받는가
정유 마진 랠리의 수혜자와 부담을 지는 쪽은 명확히 갈린다. 주가 상승의 과실은 정유 3사 주주에게 돌아간다. 반면 부담은 국내 소비자와 원화 가치 쪽으로 향한다. 유가 급등은 곧바로 국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고, 원유 100%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 특성상 무역수지에도 부담을 준다. 실제로 이번 유가 급등 이후 뉴욕 역외선물환(NDF) 시장에서 원달러 1개월물은 전 거래일 종가 1370.4원보다 3.5원 오른 1373.5원에 호가됐고, 외환시장에서는 1380원 안팎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 국채 금리와 달러인덱스가 함께 강세를 보인 영향이다. 기름값은 오르고 원화 가치는 떨어지는 이중 부담이 소비자에게 겹치는 구도다.
더구나 지금의 정유사 이익 확대는 수출이 아니라 사실상 내수와 가격 효과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국부로 순환된다”는 통념과도 다소 결이 다르다. 정부가 물량을 국내 석유화학 업계로 우선 배정하겠다고 밝힌 만큼, 정유사의 초과 이익은 해외 판매 확대가 아니라 국내에서 형성된 마진에서 나온 몫에 가깝다. 이는 국내 소비자가 지불하는 고유가 부담과 정유사 주주가 얻는 이익이 같은 시장 안에서 맞물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은행이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국제유가와 국내 물가·경상수지 관련 자료를 봐도, 유가 급등기에는 소비자물가 상승과 무역수지 악화가 함께 나타나는 경향이 뚜렷하다.

세 가지 시나리오와 체크리스트
앞으로 흐름은 크게 세 갈래로 갈릴 수 있다. 첫째, 확전이 장기화하며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더 위축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정제마진은 한동안 더 벌어지겠지만 수출 제한 같은 정책 변수도 함께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둘째, 미·이란 간 협상이 재개되며 긴장이 일부 완화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유가와 마진이 동시에 꺾이면서 이미 높아진 정유주 밸류에이션이 가장 먼저 조정을 받을 수 있다. 셋째, 정제설비가 예상보다 빠르게 복구되며 물리적 공급 차질 자체가 해소되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마진 축소 속도가 시장 예상보다 가팔라질 수 있다.
투자자라면 다음 지표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 물동량 추이, 그리고 국내 정유사의 월별 수출 비중과 물량 데이터다. 정제마진이 오르는데 수출 비중이 계속 낮아진다면 이익의 질이 가격 요인에 더 쏠리고 있다는 신호다. 다음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정제설비 가동률 복구 속도, 마지막으로는 WTI가 배럴당 90~100달러 구간에서 수요 위축 조짐이 나타나는지 여부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정유사에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점이야말로 지금의 나 홀로 랠리가 꺾이는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마치며
코스피가 급락한 날 정유 마진 랠리만 홀로 웃었다는 그림은 분명 눈길을 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물량이 아니라 가격에 전적으로 기댄 이익 구조, 이미 2022년 에너지 위기 수준까지 반영된 밸류에이션, 그리고 국내 소비자와 원화가 지고 있는 부담이라는 세 겹의 함정이 숨어 있다. 지정학 리스크가 이어지는 동안에는 이 흐름이 계속될 수 있지만, 그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건 수요 확대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파괴된 공급이 복구되지 않는다는 전제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전제가 흔들리는 순간, 지금까지의 급등폭만큼 되돌림도 가팔라질 수 있다는 점은 이 랠리에 뒤늦게 올라타려는 투자자일수록 더 무겁게 새겨야 할 대목이다.
본 글은 특정 종목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니며, 시장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참고용 정보로만 활용하기 바란다.
더 자세한 정유·원자재 시장 분석은 관련 글 더 보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