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AI 쇼크에 흔들린 美 반도체株, ‘딥시크 모먼트 2.0’이 온 것인가
이번 주 뉴욕 증시는 한 장의 벤치마크 성적표에 휘청였다. 중국 스타트업 문샷AI(Moonshot AI)가 공개한 초거대 언어모델 ‘Kimi K3’가 미국 최상위권 모델들과 견줄 만한 성능을 보여주면서, 지난해 초 전 세계 증시를 뒤흔들었던 ‘딥시크 모먼트’의 악몽이 다시 소환됐다. 여기에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차세대 AI 모델 ‘제미나이 3.5 프로’ 출시가 수개월 지연됐다는 보도, 그리고 넷플릭스의 시장 예상을 밑도는 실적 가이던스까지 겹치면서 나스닥과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동시에 무너졌다. 국내 증시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발 충격의 직격탄을 맞으며 큰 폭으로 흔들렸다. 오늘은 이번 주 글로벌 증시를 뒤흔든 ‘미국 반도체주 쇼크’의 전말과 배경, 그리고 앞으로의 시장 방향성을 짚어본다.
1. 이번 주 시장 동향: 나스닥·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 동반 급락
7월 17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한 주간의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하며 마감했다. S&P500 지수는 전일 대비 1.01% 하락한 7,457.69에 거래를 마쳤고, 나스닥종합지수는 1.4% 떨어진 25,520.24를 기록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도 0.7%가량 밀렸다. 주간 기준으로는 S&P500이 1.5% 이상, 나스닥은 2.9% 하락하며 최근 몇 주간 이어진 사상 최고치 랠리에 제동이 걸린 모습이다.
낙폭이 가장 컸던 곳은 단연 반도체 업종이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는 이날 하루에만 최대 5.7%까지 밀리며 3월 이후 최악의 한 주를 보냈고, 지난 6월 말 기록한 사상 최고치 대비로는 20% 넘게 빠지며 사실상 기술적 약세장(베어마켓) 구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인 반에크 반도체 ETF(SMH)도 4% 넘게 하락하며 지난 4월 이후 처음으로 주요 지지선을 이탈했다.
개별 종목별로는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인텔, KLA, ARM홀딩스가 각각 4% 안팎 하락했고, 마이크론과 엔비디아도 2% 넘게 밀렸다. 여기에 브로드컴과 퀄컴 등 주요 팹리스 업체들도 프리마켓에서부터 2~3%대 약세를 보이며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이 흔들렸다. 아시아 시장의 충격은 더 컸다. 대만 가권지수는 6% 넘게 급락했고, TSMC는 시장 예상을 크게 웃도는 분기 영업이익(전년 대비 77% 증가)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7% 가까이 빠졌다. 일본 증시 역시 4% 넘게 하락하며 아시아 전역의 AI·반도체 관련주가 동반 조정을 받았다.
2. 무엇이 시장을 흔들었나: 문샷AI ‘Kimi K3’가 쏘아 올린 공
2.8조 파라미터 오픈웨이트 모델의 등장
이번 조정의 진앙지는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AI 스타트업 문샷AI가 공개한 초거대 언어모델 ‘Kimi K3’다. 이 모델은 2조 8천억 개에 달하는 파라미터를 갖춘, 공개된 오픈웨이트 모델 중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문제는 규모만이 아니었다. 다양한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Kimi K3는 미국 빅테크들이 내놓은 최상위권 모델들과 견줄 만한, 또는 일부 영역에서는 이를 앞서는 성능을 보여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최상위권으로 꼽히는 앤스로픽의 ‘클로드 페이블 5’나 오픈AI의 ‘GPT-5.6’에는 다소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됐지만, 중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제한된 컴퓨팅 자원 속에서도 이 정도 성능을 구현했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딥시크 모먼트’의 재현
투자자들이 즉각 떠올린 것은 지난해 초 있었던 ‘딥시크 쇼크’다. 당시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훨씬 적은 비용으로 미국 최상위 모델에 필적하는 성능을 구현했다고 발표하면서, “AI 인프라에 이렇게까지 막대한 자본을 쏟아부을 필요가 있느냐”는 의구심이 확산돼 반도체주가 단기간에 급락한 바 있다. 이번에도 같은 논리가 재현됐다. JP모건의 앤드루 타일러 애널리스트는 “Kimi K3의 등장이 ‘딥시크 2.0’ 우려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진단했고, 골드만삭스는 보고서를 통해 “컴퓨팅 확장의 시대가 정점을 지났을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반면 시장의 반응이 과도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번스타인의 로빈 주 애널리스트는 “이번 사태는 중국의 AI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며 글로벌 최상위권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는 기존 견해를 재확인시켜준 것일 뿐”이라며 패닉에 가까운 매도세에 선을 그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역시 CNBC를 통해 “Kimi K3는 제한된 컴퓨팅 환경 속에서도 사전 학습 단계의 스케일링과 아키텍처 혁신을 결합하면 여전히 단계적 성능 도약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하면서도, 이것이 곧바로 미국 빅테크의 AI 투자 축소로 이어질 근거는 부족하다고 선을 그었다.
3. 겹악재: 알파벳 제미나이 지연과 넷플릭스 실적 쇼크
알파벳, 제미나이 3.5 프로 출시 지연 보도에 시가총액 약 200조 원 증발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점에 터진 또 다른 악재가 투자심리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었다. 블룸버그는 구글 모회사 알파벳이 차세대 플래그십 AI 모델 ‘제미나이 3.5 프로’ 출시에서 수개월 지연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직후 알파벳 주가는 하루 만에 4.4% 급락했고, 이로 인해 증발한 시가총액은 약 200조 원(1,500억 달러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보도에 따르면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는 당초 6월 출시를 시사했지만, 코딩 역량 등 핵심 성능 지표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오면서 추가 학습 데이터 보강과 일정 연기가 불가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적으로는 딥마인드, 클라우드, 안드로이드, 검색 등 여러 조직이 각자 AI 코딩 도구를 별도로 개발하면서 업무가 중복되고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조직 비대화’ 문제가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구글 측은 “비용 효율적인 다양한 모델을 빠르게 출시하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앤스로픽과 오픈AI 등 경쟁사들이 앞서가는 상황에서 시장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내부 우려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은 구글 등 빅테크의 AI 투자 성과에 대한 회의론을 자극하며 슈퍼마이크로컴퓨터를 비롯한 AI 인프라 관련주들의 동반 하락으로 이어졌다.
넷플릭스, 실적은 선방했지만 가이던스에 발목
같은 주 발표된 넷플릭스의 2분기 실적도 시장에 충격을 더했다. 넷플릭스는 2분기 매출 125억 6천만 달러로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고, 주당순이익(EPS)도 0.80달러로 예상을 소폭 웃돌며 컨센서스를 상회했다. 그러나 주가는 실적 발표 직후 장중 한때 12%까지 급락했고, 이후 낙폭을 다소 줄이긴 했지만 결국 9%대 하락으로 장을 마쳤다.
실적 자체는 나쁘지 않았음에도 주가가 급락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넷플릭스는 이번 분기에도 매출 성장세 둔화를 예고했다. 회사는 다음 분기 매출을 129억 달러, EPS를 82센트로 제시했는데 이는 시장 기대치를 소폭 밑도는 수준이다. 둘째, 회사가 그간 반기마다 공개해온 ‘시청 데이터(What We Watched)’ 보고서를 2027년부터 연 1회로 축소하겠다고 밝히면서, 투자자들이 참고해온 핵심 지표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낮아진다는 점이 불확실성을 키웠다. 올해 상반기 총 시청 시간은 970억 시간으로 전년 동기 대비 2% 늘었지만, 이는 매출 성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스트리밍 시청 시간치고는 둔화된 증가율이라는 평가다. 넷플릭스 주가는 이미 지난 1년간 45% 가까이 하락한 상태였던 만큼, 이번 실적 발표는 반등의 계기가 아니라 추가 약세의 트리거가 됐다.
4. 겹치는 지정학 리스크: 중동 확전과 유가 급등
반도체주 쇼크와는 별개로,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자극한 또 다른 변수는 중동 정세다. 미국과 이란 간의 군사적 충돌이 최근 일주일 새 다시 격화되면서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뛰고 있다. 미국이 일주일 사이 이란에 대해 네 차례 공습을 단행했고, 이에 이란 측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대응 공격에 나서면서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재부각됐다. 이 여파로 브렌트유 가격은 한때 5% 가까이 급등했고, 분쟁이 시작된 이후 누적 상승폭은 40%를 넘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유가 급등은 에너지주에는 호재로 작용했지만, 전반적인 투자심리에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가 커지면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완화 속도에 대한 기대가 후퇴할 수 있고, 이는 밸류에이션 부담이 큰 성장주·기술주에 특히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반도체주 조정이 ‘AI 기술 경쟁 구도 변화’라는 개별 재료에서 촉발됐다면, 여기에 ‘지정학 리스크발 인플레이션 우려’라는 거시 변수까지 겹치면서 이번 주 뉴욕 증시의 하락은 한층 가팔라진 측면이 있다.
실제로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 등을 통해 나타나는 시장의 기준금리 인하 기대는 유가 급등 이후 다소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반영되기까지는 다소 시차가 있지만, 투자자들은 선제적으로 ‘인플레이션 재부각 → 금리 인하 지연 → 성장주 밸류에이션 부담’이라는 연쇄 고리를 반영해 포지션을 조정하는 모습이다. 특히 이번 반도체주 조정은 밸류에이션이 이미 높은 수준까지 오른 상태에서 촉발됐다는 점에서, 개별 재료(Kimi K3, 제미나이 지연)와 거시 변수(유가, 금리)가 동시에 악재로 작용하는 ‘복합 조정’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5. 국내 증시로 번진 충격: 삼성전자·SK하이닉스 급락
미국발 반도체주 조정은 국내 증시에도 즉각적으로 전이됐다. 미국 반도체주 약세 소식이 전해진 직후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프리마켓 및 정규장에서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고, 최근 며칠 사이 누적으로는 각각 8~11%대 하락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SK하이닉스는 한때 전 거래일 대비 15% 넘게 폭락하며 주가가 200만 원선 아래로 밀려나기도 했는데, 이는 한 달여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같은 급락은 미국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 약세, 그리고 마이크론(-8%대), AMD(-3%대), 인텔(-4%대), 마벨테크놀로지(-7%대), 델테크놀로지스·웨스턴디지털·샌디스크(각각 -8~9%대) 등 메모리·AI 인프라 관련주들의 동반 급락이 국내 투자심리에 그대로 전이된 결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AI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 둔화 우려가 불거질 때마다 국내 반도체 대장주들이 먼저 흔들리는 구조가 이번에도 반복된 셈이다. 이에 정부 관계기관은 최근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열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출시 이후의 시장 동향을 점검하는 등 변동성 확대에 대한 경계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수 차원의 충격도 상당했다. 코스피는 지난 6월 18일 사상 처음으로 9000선을 돌파하며 랠리의 정점을 찍었지만, 이후 불과 17거래일 만에 7000선마저 내주며 급격한 조정을 겪었다. 특히 7월 13일에는 전 거래일 대비 669.01포인트(8.95%) 폭락한 6806.93으로 장을 마감하며 단 하루 만에 지수의 9%에 가까운 낙폭을 기록했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1조 7,047억 원, 기관이 2조 2,193억 원을 각각 순매도하며 수급까지 무너졌다. 삼성전자는 10.70% 급락하며 25만 원대로, SK하이닉스는 15.37% 폭락하며 200만 원선 아래로 밀려났다. 반도체 대장주 두 종목의 낙폭이 지수 하락의 대부분을 설명할 만큼, 국내 증시의 반도체 쏠림 현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하루였다는 평가다. 이후 외국인 매도세는 11거래일 연속 이어지며 코스피가 7400선 부근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등, 이번 미국발 반도체주 조정의 여진은 국내 증시에서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6. 전문가 전망: ‘AI 버블’ 논쟁, 아직 결론은 이르다
비관론: 레버리지發 금융 불안 경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정책 당국과 투자은행권에서는 ‘AI 버블’ 논쟁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 연례 포럼에서는 세계 정상급 경제학자와 중앙은행 인사들이 AI발 경기 충격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통화기금(IMF) 통화자본시장국의 토비아스 애드리언 국장은 “차입자와 투자자 양쪽에 걸쳐 쌓인 레버리지가 금융 안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경고했다.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록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한발 더 나아가 “AI 확산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고용 대체로 소비가 위축될 수 있고, 반대로 AI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에는 막대한 투자금이 부실화할 수 있다”는 ‘양방향 리스크’를 제시하기도 했다.
낙관론: 여전히 초기 단계인 AI 인프라 투자
반면 국내외 상당수 전문가들은 현재의 조정을 추세적 하락으로 단정하기엔 이르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고점론의 핵심 근거인 ‘실적 정점 도달’ 우려를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 지표, 즉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설비투자(Capex) 축소나 HBM 장기 공급계약 감소 등의 신호는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AI 연산 수요는 2026년에도 과거 2개년 수준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며, 생성형 AI가 단일 모델 성능 경쟁을 넘어 멀티모달·에이전트형 AI로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반도체 수요의 구조적 성장 스토리 자체는 훼손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D.A. 데이비드슨은 최근 보고서에서 엔비디아 주가가 이미 2026년 AI 수요 정점 시나리오를 상당 부분 선반영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히면서도, 목표주가는 유지한 바 있다. AI 애널리스트 킴 아이젠버그는 이번 Kimi K3 사태에 대해 “게임의 판도 자체가 바뀌었다는 인식이 일부 기관들 사이에서 ‘경계경보’를 촉발할 것”이라면서도, 이것이 곧바로 AI 투자 사이클의 종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시장은 “중국의 저비용·고효율 AI 모델 개발이 미국 빅테크의 초고가 인프라 투자 전략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아직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이며, 향후 몇 주간 발표될 빅테크들의 2분기 실적과 하반기 Capex 가이던스가 이 논쟁의 향방을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2025년 딥시크 쇼크는 어떻게 마무리됐나
이번 사태를 냉정하게 판단하려면 2025년 초 벌어졌던 ‘원조’ 딥시크 쇼크가 이후 어떤 경로를 밟았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당시에도 중국발 저비용 AI 모델 등장으로 반도체주가 단기 급락했지만, 시장의 우려와 달리 AI 추론(inference) 수요는 오히려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딥시크식 ‘추론형(thinking)’ 모델의 확산이 데이터센터의 메모리 소비를 자극하면서 D램·HBM 재고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소진됐고, 그 결과 2026년 1월 기준 DDR4·DDR5 D램 가격은 2025년 9월 이전 대비 4배 이상 폭등하는 정반대의 결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 D램 공급가를 추가로 30% 인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 같은 수급 반전이 자리하고 있다. 즉, 저비용 AI 모델의 등장이 반도체 수요를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추론 연산 수요를 자극해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촉발했다는 것이 지난해의 결론이었던 셈이다. 물론 이번 Kimi K3 사태가 동일한 경로를 밟을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저비용 모델 등장 = AI 인프라 투자 축소”라는 단순한 등식이 과거에도 한 차례 시장의 오판으로 판명났다는 점은 이번 조정의 성격을 판단하는 데 참고할 만한 선례다.
7. 투자자 시사점: 무엇을 봐야 하나
이번 반도체주 조정 국면에서 투자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빅테크들의 실제 Capex(설비투자) 가이던스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이 곧 발표할 2분기 실적에서 AI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하향 조정하는지 여부가 이번 조정이 ‘일시적 노이즈’인지 ‘추세적 전환’인지를 가르는 결정적 신호가 될 전망이다. 둘째, 중국발 오픈소스 AI 모델들의 실제 상업적 파급력이다. Kimi K3가 벤치마크상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 하더라도, 이것이 실제 기업 고객들의 클라우드·컴퓨팅 지출 패턴을 바꿀 만큼 파급력을 가지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셋째, 중동發 지정학 리스크와 유가 흐름이다. 유가 급등이 장기화될 경우 인플레이션 우려가 재부각되면서 연준의 금리 정책 경로에 대한 기대가 흔들릴 수 있고, 이는 밸류에이션이 높은 성장주 전반에 추가적인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장주들이 미국 증시 변동성에 매우 민감하게 연동되는 구조라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인 주가 변동성 확대는 불가피하겠지만, HBM을 비롯한 AI 메모리 반도체의 구조적 수요 자체가 훼손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개별 기업의 실적 발표와 가이던스를 통해 펀더멘털 훼손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중요해 보인다.
당장 다가올 확인 포인트: 빅테크 2분기 실적 시즌
시장의 눈은 이제 곧바로 이어질 빅테크들의 2분기 실적 발표로 향하고 있다. 메타는 오는 7월 29일 장 마감 후 2분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며, 뒤이어 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애플 등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 주요 기업들도 잇달아 실적을 공개할 것으로 예정돼 있다. 특히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매출·이익 수치 자체보다도 각 사가 제시할 하반기 및 2027년 Capex(설비투자) 가이던스다. 만약 하이퍼스케일러들이 AI 데이터센터 투자 계획을 기존 대비 하향 조정한다면, 이는 Kimi K3발 우려가 실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며 반도체주에 추가적인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반대로 기존 투자 계획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상향 조정한다면, 이번 조정은 일시적 노이즈로 소화되며 반도체주가 빠르게 낙폭을 만회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투자자들은 향후 2~3주간 발표될 이들 기업의 컨퍼런스콜 발언, 특히 CEO와 CFO들의 AI 투자 관련 코멘트를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하반기 메모리 가격 전망과 HBM 공급 계약 갱신 여부도 핵심 변수다. 만약 이번 조정이 과거 딥시크 쇼크 때와 유사하게 일시적 충격에 그치고 AI 추론 수요가 재차 메모리 슈퍼사이클을 견인하는 흐름으로 이어진다면, 국내 반도체 대장주들의 반등 속도가 시장 예상보다 빠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시나리오일 뿐이며, 실제 수급과 실적 지표를 통한 확인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마무리: 요약
이번 주 미국 증시는 중국 문샷AI의 초거대 모델 ‘Kimi K3’ 등장을 계기로 ‘딥시크 모먼트 2.0’ 공포에 휩싸이며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급락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는 6월 말 고점 대비 20% 넘게 빠지며 사실상 약세장에 진입했고, 나스닥과 S&P500도 주간 기준 2~3%대 하락을 기록했다. 여기에 알파벳의 제미나이 3.5 프로 출시 지연 보도로 시가총액 약 200조 원이 증발했고, 넷플릭스는 실적 호조에도 성장 둔화 가이던스와 정보 공개 축소 우려로 주가가 9%대 급락했다.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 격화에 따른 유가 급등이라는 거시 변수까지 겹치며 투자심리는 한층 위축됐다.
국내 증시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발 충격을 그대로 전이받아 큰 폭의 조정을 겪었다. 다만 골드만삭스 등 일부 기관의 비관론과 달리, 뱅크오브아메리카·번스타인 등은 이번 사태가 AI 투자 사이클의 근본적 붕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신중론을 유지하고 있다. 결국 관건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실제 투자 지출 계획과 AI 모델 상업화의 실질적 진전 여부다. 투자자라면 단기 변동성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앞으로 이어질 빅테크 실적 시즌과 Capex 가이던스를 통해 이번 조정이 ‘숨 고르기’인지 ‘추세 전환’인지를 냉정하게 판단해 나갈 필요가 있다.
2025년의 딥시크 쇼크가 결과적으로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서막이었다는 선례를 감안하면, 이번 Kimi K3발 조정 역시 시간이 지나면 전혀 다른 국면으로 해석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지나간 사례일 뿐, 이번에도 같은 결과가 반복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는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쏟아질 빅테크들의 실적 발표와 Capex 가이던스, 그리고 중동 정세의 향방이 이번 조정의 성격을 가를 가장 확실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변동성이 큰 장세일수록 개별 뉴스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실적과 수급이라는 펀더멘털 지표를 중심으로 냉정하게 대응하는 자세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