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돌파 다음날, 정작 시장이 두려워하는 건 호르무즈 홍해 이중 봉쇄의 ‘다음 수’다
2026년 9월 9일,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7월 24일 이후 처음이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가 요르단 주둔 미군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했다고 주장한 다음 날, 예멘 후티 반군은 사우디 남부 4개 도시를 드론과 미사일로 동시에 타격했다. 시장은 이를 호르무즈 홍해 이중 봉쇄의 전조로 읽었고, 일부 투자은행은 4분기 유가 전망치를 최고 150달러까지 끌어올렸다. 그런데 수치를 뜯어보면 지금 이 순간 원유가 실제로 부족해서 가격이 뛴 것은 아니다. 사우디는 이미 우회로를 뚫어 버텨내고 있다. 진짜 무서운 이야기는 그 우회로 자체가 막히는 다음 단계에 있다.
목차
- 배럴당 100달러, 이틀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 사우디의 자구책, 얀부항 우회수출이 5배 가까이 늘었다
- 바브엘만데브 해협, 우회로의 우회로가 없다는 사실
- VLCC는 왜 희망봉으로도 쉽게 못 가는가
- 호르무즈 홍해 이중 봉쇄가 한국에 보내는 청구서
배럴당 100달러, 이틀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9월 9일 브렌트유는 100.02~101.21달러, WTI는 93.03~96.05달러 선까지 올라 전장 대비 2~3%대 급등했다. 방아쇠는 이틀에 걸쳐 두 번 당겨졌다. 9월 8일 예멘 후티 반군이 드론과 미사일로 사우디 남부의 카미스무샤이트, 아브하, 나즈란, 지잔 등 4개 도시를 공습해 최소 73명의 피해가 발생했다. 사우디군은 즉시 예멘 사나 동부와 타이즈 지역에 보복 공습을 가했다. 하루 뒤인 9월 9일에는 이란 IRGC가 요르단 알아즈라크 소재 미군기지를 탄도미사일로 공격했다고 주장했고, 미군 구축함 2척이 타격당했다는 주장까지 겹쳤다. 쿠웨이트와 바레인 근해 유조선 공격 위협도 함께 제기되며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자체를 강화하는 모양새다.
이 두 사건이 하루 간격으로 겹치면서 시장은 호르무즈와 홍해라는 원유·물류의 두 관문이 동시에 흔들리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브렌트유 100달러 돌파라는 헤드라인 숫자만 보면 당장 공급이 끊긴 것처럼 읽히지만, 실제로는 사우디가 이미 한 달 전부터 우회 대응 체제를 가동해 놓은 상태였다. 즉 이번 급등은 ‘오늘 기름이 없어서’가 아니라 ‘앞으로 없어질 수 있다는 공포’가 먼저 가격에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그 우회 대응의 실체를 봐야 이번 유가 급등의 성격이 제대로 보인다.

사우디의 자구책, 얀부항 우회수출이 5배 가까이 늘었다
호르무즈 리스크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이후 사우디는 국토를 가로지르는 송유관(이스트-웨스트 파이프라인)을 통해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원유를 실어 나르는 방식을 대폭 확대했다. 8월 자료 기준으로 얀부항 우회수출 물량은 하루 약 76만 배럴에서 약 375만 배럴로 급증했다. 약 5배에 가까운 증가폭이다. 이 물량의 62%는 인도, 일본, 중국, 한국 등 아시아 4개국으로 향한다. 한국 정유사들도 이 우회 물량에 이미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수치가 말해주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 호르무즈 해협이 실제로 완전히 막힌 것은 아직 아니라는 점이다. 사우디는 해협을 거치지 않고도 원유를 실어낼 방법을 이미 실행하고 있다. 둘째, 그럼에도 이 우회로에 이 정도로 급하게 의존해야 할 만큼 호르무즈 리스크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지금의 유가 100달러는 ‘공급이 끊겨서’가 아니라 ‘끊길 가능성에 대비해 값비싼 우회를 택했기 때문에’ 붙은 프리미엄에 가깝다. 문제는 이 우회로 자체가 완전무결한 대안이 아니라는 데 있다. 얀부항 우회수출이라는 카드는 호르무즈 리스크에는 효과적인 방패였지만, 그 카드를 쓰기 위해서는 또 다른 관문을 지나야 한다는 사실이 다음 장에서 드러난다.

바브엘만데브 해협, 우회로의 우회로가 없다는 사실
얀부항으로 빠져나온 원유는 그 자체로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는다. 홍해를 거쳐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해야 수에즈운하나 아프리카 남단으로 이어지는 국제 항로에 합류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해협이 바로 후티 반군의 공격이 집중되는 지점이다. 9월 8일 사우디 남부 공습 이전부터 후티의 홍해·바브엘만데브 공격은 이미 누적돼 왔고, 그 여파로 8월 27일 하루 동안 바브엘만데브를 통과한 원자재운반선은 단 11척에 그쳤다. 수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다.
여기서 이번 사태의 진짜 구조가 드러난다. 사우디가 호르무즈 위험을 피해 만든 우회로가 결국 바브엘만데브라는 두 번째 초크포인트를 다시 통과해야 하는 구조다. 케이플러는 만약 바브엘만데브가 완전히 봉쇄될 경우, 얀부항에서 원유를 공급받는 아시아 정유업체들이 약 한 달의 운송 지연을 겪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호르무즈만 막히는 상황이라면 얀부항이 안전판 역할을 할 수 있지만, 호르무즈 홍해 이중 봉쇄가 동시에 현실화되면 그 안전판 자체가 무력화된다. 일부 투자은행이 내놓은 유가 150달러 전망은 바로 이 이중 구조, 즉 우회로마저 막히는 시나리오를 가격에 선반영한 결과다. 다만 이는 아직 확정된 시나리오가 아니라 리스크 프리미엄 단계라는 점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다. 9월 9일 기준으로도 바브엘만데브가 완전히 봉쇄됐다는 공식 확인은 나오지 않았고, 후티의 공격과 통행량 감소가 겹치는 ‘반쯤 막힌’ 상태가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VLCC는 왜 희망봉으로도 쉽게 못 가는가
바브엘만데브마저 막힌다면 남은 선택지는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을 도는 항로뿐이다. 그런데 이 대안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다. 초대형유조선 VLCC는 흘수와 규모 문제로 애초에 수에즈운하를 통과할 수 없는 선종이다. 평소에도 VLCC는 홍해·수에즈 경로 대신 희망봉을 도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브엘만데브 통행 자체가 막히면 이 경로 의존도가 더 커진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희망봉 우회가 본격화될 경우 VLCC와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수요가 기존보다 14% 늘어나며, 이를 충당하려면 VLCC 약 70척, 수에즈막스급 약 75척이 추가로 필요하다.
선박은 반도체나 원자재처럼 단기간에 증산할 수 있는 자산이 아니다. VLCC 한 척을 새로 건조하는 데는 통상 2~3년이 걸린다. 결국 바브엘만데브 봉쇄가 장기화되면 남은 선택지인 희망봉 우회조차 선박 부족이라는 또 다른 병목에 부딪힌다. 이것이 이 글이 강조하는 반컨센서스 지점이다. 지금의 유가 100달러를 ‘이미 심각한 공급 부족의 증거’로 읽는 것은 성급하다. 오히려 지금은 사우디의 얀부항 우회수출이라는 1차 방어선이 살아 있는 국면이다. 진짜 위험은 이 1차 방어선의 통로인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완전히 막혀, VLCC 우회항로라는 2차 방어선조차 선박 부족으로 제 기능을 못 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 구조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신호가 있다. OPEC+는 9월 초 10월 산유량을 동결하기로 했다. 2023년 도입한 하루 165만 배럴 규모의 자발적 감산분을 풀어 증산할 여력은 남아 있지만, 정작 각국의 실제 생산량은 이미 공식 목표치를 밑돌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수출 자체가 방해받는 상황에서는 산유국이 서류상 생산 목표를 올려도 그 물량이 실제로 시장에 도달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즉 이번 사태의 병목은 ‘땅속에 기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뽑아낸 기름을 배로 옮길 통로가 이중으로 좁아져서’ 생긴다는 이 글의 핵심 논지와 정확히 맞물린다. OPEC+가 잉여생산능력을 쥐고 있어도 그 물량이 바브엘만데브 해협 통항량 회복 없이는 시장에 닿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부 투자은행의 유가 150달러 전망은 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격에 선반영하려는 시도지만, 실제 완전 봉쇄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확정적 예언으로 받아들이기는 이르다.
호르무즈 홍해 이중 봉쇄가 한국에 보내는 청구서
한국은 원유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다. 이번 사태에서 아시아 4개국 중 하나로 얀부항 우회 물량의 상당 부분을 받고 있다는 점은 단기적으로는 다행이지만, 동시에 이중 봉쇄 구조의 취약성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브렌트유 100달러 돌파는 곧바로 원유 도입단가 상승, 정유사 마진 압박, 국내 유가·물류비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휘발유·경유 소비자가격은 물론, 석유화학·항공·해운처럼 원유를 원가에 직접 반영하는 업종의 실적에도 영향이 번질 수 있다.
만약 바브엘만데브 해협까지 완전히 막혀 얀부항발 물량이 한 달가량 지연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정유사는 재고 소진 속도와 대체 물량 확보 사이에서 조달 비용이 한 번 더 뛰는 이중 청구서를 받게 된다. 여기에 더해 VLCC 우회항로까지 병목에 걸리면 도입 일정 자체가 불확실해져 정유·석유화학 업체의 원료 재고 운용 전략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 원자재 가격 변동은 수입물가와 무역수지에 즉각 반영되는 지표인 만큼,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수입물가·원자재 가격 동향 자료를 통해 이번 유가 급등이 실제 물가 경로에 어떻게 전이되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원유처럼 공급망 리스크에 취약한 원자재가 있는가 하면, 금·은·구리처럼 투자 성격이 전혀 다른 원자재도 있다. 온스당 4,390달러 vs 66달러, 원자재 투자 방법이 금·은·구리마다 다른 이유 글에서 원자재별로 접근법이 왜 달라야 하는지 짚은 바 있다. 지금처럼 지정학 리스크가 원자재 가격을 흔드는 국면에서는 개별 원자재의 공급망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막연한 유가 전망보다 훨씬 실질적인 판단 근거가 된다.
호르무즈 홍해 이중 봉쇄라는 이번 사태 역시 단순한 ‘중동 리스크’로 뭉뚱그릴 문제가 아니다. 초크포인트가 하나가 아니라 둘이 겹쳤고, 그 두 번째 초크포인트가 첫 번째 초크포인트의 유일한 우회로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이 구조를 이해해야 앞으로 유가 뉴스가 나올 때마다 어느 지표를 먼저 확인해야 할지, 즉 얀부항 물량 추이와 바브엘만데브 통항량이라는 두 개의 선행지표를 가늠할 수 있다.
본 글은 특정 자산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니며, 시장 상황 이해를 돕기 위한 참고용 정보입니다. 투자 판단과 그에 따른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