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잘 사는 사회는 왜 늘 이상향에 머무를까?

우리는 흔히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이상적인 목표로 상상합니다.

누구나 비슷한 수준의 삶을 누리고, 큰 갈등 없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사회 말이에요 😊

하지만 현실 세계를 보면 그런 사회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시도했던 실험들도 결국은 다른 형태의 불평등과 갈등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글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구조적인 한계, 그리고 전쟁과 군비 경쟁의 아이러니까지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사회는 왜 유지되기 어려울까

“모두가 똑같이 나누고, 똑같이 사는 사회”는 얼핏 들으면 아주 매력적으로 들립니다.

실제로 20세기에는 이런 이상을 내세우며 사회주의 체제를 도입한 국가들이 여럿 있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 공통적인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1) 보상이 같을 때, 일할 동기도 줄어든다

사람은 보통 “노력 → 보상” 구조가 뚜렷할수록 더 열심히 일합니다.

내가 더 공부하고, 더 일하면 그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야 에너지를 쓰게 되죠.

그런데 어떤 일을 하든 결과가 비슷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 “열심히 하든 적당히 하든 결과가 같네?”

· “굳이 내가 더 힘들게 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쌓이면 전체적인 생산성이 떨어집니다.

평등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던 구조가 오히려 경제의 활력을 빼앗는 역설적인 상황이 생기는 거죠.

2) 평등을 설계하는 ‘권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아무리 평등을 외쳐도 “분배를 설계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은 항상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 누가 어떤 자원을 얼마나 가져가는지

· 어떤 정책을 우선 적용할지

· 어느 집단을 먼저 지원할지

이 모든 걸 결정하는 위치에는 늘 권력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권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특정 집단에 집중되기 쉽습니다.

결국 “평등을 위한 시스템” 내부에서 새로운 불평등과 특권이 생겨나는 모순이 반복됩니다.

인간의 본성과 욕망, 그리고 탐욕

이상적인 사회를 유지하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 더 안락한 집에서 살고 싶고

· 더 많은 자산을 갖고 싶고

· 자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이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 인류가 발전해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욕망이 어느 순간 ‘탐욕’으로 변할 때입니다.

1) 평등한 구조일수록 작은 차이도 크게 느껴진다

모두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져 있는 사회에서는 아주 작은 차이도 크게 느껴집니다.

· 남들보다 조금 더 좋은 집

· 조금 더 편한 일자리

· 조금 더 많은 자산

이런 작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더 공격적으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만 더”가 쌓여 결국 큰 격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2) 규칙을 틈타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

어떤 제도든 빈틈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항상 그 빈틈을 발견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 남들보다 먼저 정보를 얻는 사람

· 규칙의 허점을 이용해 더 많은 혜택을 가져가는 사람

· 권력과 자원을 쥔 사람과 손을 잡는 사람

이런 움직임이 쌓이면, 표면적으로는 평등을 지향하는 시스템 안에서도 실질적인 불평등이 커지게 됩니다.

전쟁을 원치 않으면서 군비에 투자하는 아이러니

대부분의 국가는 전쟁을 원치 않습니다.

전쟁은 사람의 생명, 경제, 사회 전반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도 왜 국방비와 군사력 경쟁은 계속될까요?

1) 전쟁을 막기 위한 힘, ‘억제력’

군사력은 단지 공격을 위한 수단만은 아닙니다.

상대가 함부로 공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억제력(deterrence)의 역할도 합니다.

· “우리를 공격하면 당신도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이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각 국가는 일정 수준 이상의 군사력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을 막기 위한 힘”이 곧 군사력 경쟁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는 셈입니다.

2) 서로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국제 질서

국가 간 관계는 개인 관계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각자의 역사, 이해관계, 안보 전략이 얽혀 있어 어느 한쪽을 100%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 상대가 지금은 우호적이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 경제 상황이 급변했을 때, 자원을 둘러싼 분쟁이 생기지 않을지

이런 불확실성 때문에 국가들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군비를 줄이지 못합니다.

3) 부와 자원을 둘러싼 갈등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에는 여러 명분이 붙었지만, 그 이면에는 부(wealth)와 자원, 전략적 이익이 자리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 자원이 풍부한 지역을 확보하기 위해

· 중요한 항로와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전쟁은 엄청난 희생을 수반하지만, 일부 세력에게는 부와 권력을 빠르게 확대할 기회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순된 구조가 오늘날까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향이 의미 있는 이유

여기까지 보면 “결국 사람은 변하지 않고, 이상적인 사회는 불가능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상향 자체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

이상향은 완벽하게 도달해야 할 목적지라기보다는, 우리가 현재 위치를 돌아보고 방향을 잡는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합니다.

· 완전한 평등은 불가능하더라도, 극단적인 불평등은 줄여야 하고

· 전쟁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더라도, 갈등을 줄이고 대화를 늘려야 하며

· 인간의 욕망을 없앨 수 없다면, 제도를 통해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상적인 사회가 실제로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그 이상을 향해 얼마나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느냐”일지도 모릅니다.

마무리

함께 잘 사는 사회,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는 사회는 여전히 인류가 꿈꾸는 목표입니다.

비록 완벽한 형태로 실현되기는 어렵더라도, 그 이상을 상상하고 논의하는 과정 자체가 사회를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게 합니다.

이상향은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기준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실의 한계를 냉정하게 인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더 나은 방향을 계속 찾는 태도가 앞으로도 중요해 보입니다 😊

주의문구

※ 본 글은 특정 정치 이념이나 정파를 지지·비판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며, 역사와 사회 전반에 대한 일반적인 관찰과 의견을 정리한 것입니다.